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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를 만든 사람들-17] "이보다 더 용감하고 관대할 수 없다”

by 박언진기자 posted Nov 0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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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브라운 고든 

남부 리 장군이 가장 신임한 용장...53번째 주지사 역임 
산업화등 조지아 발전기여 공로 주의사당에 동상 설립   



“미국은 그보다 더 용감하고 관대하며 두려움이 전혀 없는 신사이자 장군을 배출한 적이 없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극찬한 존 브라운 고든 장군(1832-1904)을 오늘의 조지아를 있게 한 17번째 인물로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고든 장군은 조지아주의 94번째 카운티인 고든카운티의 지명을 유래하게 한 인물은 아니다. 그보다 한 세대 더 일찍 살다 간 윌리엄 워싱턴 고든(1796-1842),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1호 조지아 출신으로 ‘센트럴 오브 조지아 레일로드’의 초대 회장인 선배에게 지명의 유래는 양보했지만 고든 장군은 조지아주의 53대 주지사를 역임, 조지아주 초기 발전에 크게 공헌하면서 지금도 조지아 주의사당 앞에 말을 탄 늠름한 그의 기개 있는 동상 모습을 볼 수 있다. 
남부군의 로버트 E.리 장군이 가장 신임한 장군 중 하나로 알려진 고든 장군은 1832년 2월 6일 조지아주 업슨카운티에서 12명의 자녀들 중 4번째로 출생했다. 그의 가족은 1840년대 조지아주 워커카운티로 이주, 그곳에서 고든 장군의 아버지는 큰 플랜테이션 농장을 운영했다. 그는 조지아대학교(UGA)에서 매우 뛰어난 학생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미스티컬7 소사이어티’의 회원이었으나 졸업 전에 캠퍼스를 떠났다. 그는 애틀랜타에서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 시험을 통과해 법률 사무소를 개업하기도 했으며 아버지와 함께 테네시와 조지에서 광산 사업에 투자하기도 했다. 그는 레베카 패니 해럴슨 양과 1854년 결혼해 오랫동안 이어진 행복한 결혼 생활 가운데 6명의 자녀를 뒀다.  
비록 군사적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고든은 남북전쟁에서 용맹을 떨치며 리 장군의 신임을 바탕으로 장군으로 승진한다. 
용맹스럽기도 했지만 고든 장군은 관대한 도량의 장군으로서도 명예를 얻었다.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고든 장군이 적장인 프랜시스 발로 사령관이 부상을 입었을 때 살 수 있도록 도와준 일화는 유명하다. 향후 이 두 사람간의 우정은 1896년 발로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된다. 
1868년 조지아 주지사에 도전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고든 장군은 대신 1873년 연방상원의원으로 선출되며 남부군 지휘 장군으로서는 처음으로 1879년 연방상원을 대표하게 된다. 고든 장군은 산업화 혁명으로 발전을 도모하는 ‘새로운 남부’ 운동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그는 조지아주에서 부정과 부패의 고위 관료들을 색출하는 일에 열심이기도 했다. 고든 장군은 1886년 조지아의 53대 주지사로 선출되며 1891년에서 1897년까지 연방상원직을 다시 역임했다. 고든 장군은 1904년 1월 9일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아들을 방문하던 중 7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장례식에는 7만5000명이 모여 고인을 추모했다고 기록되어있다. 


박언진기자 ejpark@atlantachosun.com  

Jbgordon.jpg
존 브라운 고든 장군(1832-1904).
Gordonstatue_crop.JPG
고든 장군의 동상. 다운타운의 주의사당 북동부 쪽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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