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조지아를 만든 사람들-16] “황폐화된 남부, 철도로 재건하라”

by 박언진기자 posted Oct 26,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앨거논 시드니 뷰포드 

 
버지니아 출생, 3천마일 넘는 R&D 철도 기업 회장
애틀랜타와 샬럿 연결 등 동남부 재건에 중추 역할 


조지아를 만든 사람들, 이번에는 동남부 최고 규모의 쇼핑센터, 몰오브 조지아로 유명한 귀넷카운티의 뷰포드시 지명이 유래된 앨거논 시드니 뷰포드(Algernon Sidney Buford, 1826-1911)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앨거논 시드니 뷰포드는 1826년 1월 2일 버지니아의 채텀에서 출생했다. 뷰포드의 전체 삶은 한 마디로 말하면 남북전쟁 후 황폐화된 남부 재건의 1등 공신인 철도 건설에 이바지한 삶이다. 버지니아 대학교를 졸업한 뷰포드는 법률 사무소를 오픈하기 위해 고향인 버지니아 채텀으로 돌아온다.  
뷰포드의 선택은 당시로서는 실력 있는 변호사들이 그 마을에 이미 명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뷰포드의 롤모델이 된 저명한 변호사 중에는 ‘리치몬드&댄빌 레일로드’의 창시자이자 초대 회장인 ‘휘트멜 푸 턴스털’도 있었다. 뷰포드는 더욱이 턴스털 변호사의 조카사위도 되는 인척 관계였다. 뷰포드는 턴스털 변호사의 누나인 엘리자 바커 턴스털의 딸인 에밀리 위니프레드 타운스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후 남동생인 턴스털 변호사를 실제로 키웠기 때문에 이들 남매의 관계는 각별했고 그로 인해 뷰포드도 철도 사업에 일찍이 쉽게 연루될 수 있었다.
뷰포드는 버지니아주 하원에서 1853년에서부터 1854년까지 피츠실배니아카운티를 대표하는 정치계에 입문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1863년 남북전쟁 기간 동안에 뷰포드는 리치몬드의 ‘버지니아 역(Virginia Depot)’의 책임을 맡았으며 전쟁 후 뷰포드는 곧 본격적으로 ‘리치몬드와 댄빌 레일로드(R&D)’의 회장으로서 뷰포드 대령으로 불렸다. 1865년 9월 13일 프랜시스 H.피어몬트 당시 버지니아 주지사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뷰포드 대령은 총 140마일에 이르는 R&D의 회장으로 선출됐다. 맨체스터와 리치몬드 사이 제임스 리버를 가로지르는 교각을 포함해 남북전쟁의 뼈아픈 상흔들은 R&D와 함께 빠르게 치유되어갔다. 
향후 20년간 R&D의 회장으로서 뷰포드 대령은 140마일의 철로를 무려 3000마일까지 연장시키는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 R&D의 초기 인수 프로젝트에는 1866년 피드몬트 레일로드와 1871년 노스캐롤라이나 레일로드가 대표적이다. 특히 1872년 R&D는 노스캐롤라이나의 샬럿과 애틀랜타를 연결시키는 레일을 완공할 수 있도록 애틀랜타와 리치몬드 에어라인 레일웨이에도 큰 도움을 줬다. 이 라인은 동남부 전역의 레일로드 시스템인 ‘피드몬트 에어 라인’의 핵심 연결 링크로 결국 뷰포드 대령은 남북전쟁 후 ‘남부의 재건’에 실제적으로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박언진기자 ejpark@atlantachosun.com
Algernon Sidney Buford 1826.jpg
앨거논 시드니 뷰포드(1826-1911).
Buford_Georgia_Main_Street.jpg
뷰포드의 공을 기념해 지명을 갖게 된 귀넷카운티의 뷰포드 다운타운 메인스트리트.  

Articles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