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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통칼럼 모자의 역사 이야기

2012.11.09 17:06

편집실 조회 수:8763

신문발행일 201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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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 다양한 모자의 종류 만큼, 년대는 불확실 하나, 그 역사는 길고, 이야기는 많다. 기원전 3200년경 이집트 나일 강가에 형성되었던 테베스(Thebes)의 무덤 벽화에서 밀집모자를 쓰고 있는 남성의 그림이 발견됬다. 이를 보면, 인류가 모자를 착용한 시기는 그 이전이었다. 기원 450년 이전, 고대 그리스 초기에 프리지아 노예들은 그리스와 로마에서 해방 된 이후, 프리지언 모자를 착용하기 시작했었다. 처음 머리를 감싸는 단순한 형태에서 시작되었으나, 시간과 환경에 따라 모자의 틀과 챙도 많은 변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챙을 달아 사용한 최초의 모자는 페타소스(Pethasos)인 것으로 전해진다. 중세의 이르러 모자는 아름답게 보이려는 여인들의 멋, 머리 장식의 한 형태로 발전했다. 화려하고 다양한 모양으로 패션화 된 것은, 초기 중세, 1400년 경, 에냉(hennin) 모자가 유행하면서 부터이다. 에냉 부인은 자신의 고안데로, 딱딱한 천을 사용하여, 원추형 모자를 만들어, 머리 뒤쪽으로 기울게 착용했다. 이 원추형 모자 위에 원형의 베일을 덮어 어깨 위로 늘어뜨린다. 여성들을 위해 디자인이 된 것으로, 15세기 중엽까지 전성을 이루었다. 이 모자는 동화 속의 공주가 착용했었다. 하지만, 여러 불편함으로 인해 자취를 감추었다. 후에 이 모자는 요즈음, 베일을 없어지고, 광대가 착용 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이 변형되어, 성탄절에 싼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쓰고 있다. 그리고, 1200년대 중반,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기독교인들과 구별하기 위해 뾰족한 모자를 착용했고, 동족에게 강요하기도 했다. 19세기 초경에 들어, 많은 여성들이 챙이 없는 큰 모자를 쓰기 시작했고, 큰 모자에 리본, 꽃, 깃털 등의 악세사리 장식을 달아 착용했었다. 부, 신분, 미적 감각이 어울려 발전을 거듭하면서, 유럽에서 오랜 세월 동안 모자 스타일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세기 초반부터 여성들이 짧은 머리스타일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모자도 헬멧처럼 머리를 감싸는 형식이 되었다. 이 시기부터 새로운 패션스타일의 모자들이 경쟁하듯 쏟아져 나왔고, 다양하고 화려한 형태의 모자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18세기 영국에서 특별 신분의 상징이 된 모자는 구입하기 위해 많은 세금을 지불해야만 했었다. 서구의 모자가 브랜드화 되기 시작한 것은 샤넬에 의해서였다. 동양에서도 모자 역사가 오래고, 인식 또한 귀한 것이었다. 그리고, 모자는 오래전 우리 선조때부터 의복 못지 않게 중시된 것이었다. 그래서, 때와 장소, 신분에 맞게 모자를 착용했었다. 우리 선조들에게 모자 없는 임금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었다. 의복은 고사하고 모자만 해도, 평민들에게는 부러운 것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결혼식 때, 단 한번, 최하위직 관료의 복장을 하고 식을 치루었다. 그 중 하나가 사모(紗帽)란 모자였다. 그리고, 우리의 벽화와 기록을 통해 보면, 상고시대 관모는 원시 형태의 건(巾)을 이용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의 왕은 물론이거니와 관직의 신하, 장수, 지방 유지의 신분의 사람들은 모두 여러 형태의 모자를 착용하였었다. 조선시대로 들어서, 초기부터 개화기까지 남성들은 갓이란 모자를 착용했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폭이 넓었다 좁았다, 길이, 높이, 장식의 변화도 많았다. 대원군의 의관개정 이후, 작은 갓으로 정해졌지만 말이다. 고려시대부터 착용했던 갓인, 전립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무관들이 착용했는데, 상급 군인은 품질 좋은 “안올림 벙거지”, 하급군인, 신분이 낮은 가마꾼 등의 신분이 낮은 사람은 “벙거지” 혹은 “벙테”를 착용했었다. 박쥐문양의 갓은 부호나 귀족, 사대부들이 사치용으로 착용했다. 서양 화가가 그린 장기두기의 그림에는 모든 사람들이 갓, 망건, 탕건을 쓰고 있었다니, 우리 조상의 모자 사랑를 짐작할만 하다. 이로 보건데, 우리는 모자의 나라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오죽하면, 갓 위에 덮어 쓰던, 빗물 가리게 갈모(雨帽)가 있었을까? 그리고, 여자 난방용 모자 남바위, 돌모자 백립, 복건, 아기수모기, 그리고 조선시대 왕이 조정에서 신하로부터 축하를 받거나, 외국사신을 접견할 때, 강사포를 입고 원유관을 섰었다. 특히,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말의 깃털이나 꼬리털로 만든, 2층, 3층 전후좌우 봉루리의 기복이 있고 상부가 트인 정자관을 착용했다. 유생들은 평상시, 혹은 서원, 향교, 과거 시험장에 갈 때, 제에 잠석할 때, 유건 혹은 민자건을 착용했었다. 신분 구별없이 남자들은 패랭이, 여인들은 추위 방지용인 풍차(風遮), 조바위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모자 기원설에는, 한서 방지를 위한 실용설, 예의를 갖추기 위한 윤리설, 미적 장식의 예술설, 원시 신앙 유래설인 종교설 등이 있지만, 고고학적 증거는 충분치 못하다. 옛 이집트 시대의 벽화, 전설시대의 인물들이 전투용으로 투구를 사용한 것, 우리 통일신라 시대의 관모가 이미 존재 했던 것으로 보아, 모자는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이 분명하다. 성경에 모자 이야기는 함므라비 법전 시대 이전, 기원 4000년 전 욥이 생존했던 때에 나타난다. 욥은 “나의 영광을 벗기시며, 나의 면류관을 머리에서 취하시고”라 했다. 이스라엘 출애굽 후, 하나님은 광야에서 모세에게 “제사장을 위한 제복을 만들되, 거룩한 직분을 위해 관을 만들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우셨고, 그를 믿고 의뢰한 자들을 위해, 정한 관, 생명의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 기쁨의 면류관, 영화와 존귀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를 약속하셨다” 했다. 과거 장수는 투구를, 경기 승자는 월계관을 쓴다. 하지만, 어떤 이는 재물과 신분을 면류관으로, 어떤 이는 교만, 치욕과 욕심으로 자신의 면류관으로 삼는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셨다. 믿음과 삶은 미래 모자가 된다. 지금 쓴 모자는 무엇며, 미래, 쓰게 될 것은 무엇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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