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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통칼럼 짐에 눌린 자

2016.06.10 13:17

조선편집 조회 수:1064

신문발행일  
무더운 날씨에 무거운 짐을 혼자 옮기느라 탈진 직전까지 이르렀다는 느낌이었다. 누가 시킨 일도 의무도 아니었다. 작은 계획과 욕심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사서했다. 며칠 동안 몸살을 앓을 것만 같았는데 다행히 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거뜬해졌다.
아담과 이브가 사단과 마귀에게 속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먹었다. 그 후부터 인간에게 영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각종 수고와 무거운 짐들이 발생했다. 이브는 잉태하는 고통과 수고함으로 자식을 낳고 남편을 사모해야만 했다. 아담은 종신토록 수고해야 소산을 먹게 되는 짐이 발생했다.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고는 물론, 영적으로 죄와 죽음의 짐을 지고 가는 고달픈 인생이 된 것이다. 모든 인간은 그 죄로 인한 유산과  자신으로 인해 발생한 수고와 짐을 지고 산다. 그리고 잘못된 사람과 신앙과 복되지 못한 환경은 영적 정신적 육체적 수고와 무거운 짐을 사람에게 지운다. 그 수고와 짐을 벗기 위한 발버둥은 끊임이 없었다. 그 결과 인간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과학문명의 소산들이 마치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의 수고와 짐은 더욱 무거워졌다.
약물과 놀이  중독에  빠져보지만 결과는 그 짐을 더할 뿐이다. 생존 기간 동안 각종 무거운 짐을 졌다 벗었다 하는가 하면, 평생 그 짐을 벗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모든 수고와 짐이 같은 것이 아니다.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있고, 해로운 것도 유익한 것도 있다.
때로 육체의 수고는 몸을 가볍게 한다.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때로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이 낙이요, 하나님의 선물이 된다. 하지만 사단과 마귀가 주는 수고는 더욱 더 무거운 수고와 짐이요, 죄인과 악인의 수고는 괴롬과 고통이요. 그리고 정신적 영적 피로와 곤핍이 된다. 고로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란 탄식이 나왔나 보다. 그러면 수고와 무거운 짐을 벗을 길이 없을까? 이스라엘은 과거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고생을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빼어내어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정하신 그 날에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서 모든 무거운 짐을 그 목에서 벗어지게 하시고 그 멍에가 부러지게 하실 것이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그 수고와 무거운 짐의 멍에를 덜어주시기 원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우리를 부르셨다. 예수가 인생의 진정한 안식처가 되신다는 것이다.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서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고 모시면 평안과 안식을 누린다. 예수님을 믿으면 악령의 세력, 죄의 세력, 각종 눌림의 세력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께 나와 그와의 인격적 만남을 갖는 것이다. 나아가 억눌린 수고와 무거운 짐을 벗으려면 예수님의 멍에를 매고 예수님을 배워야 한다.
어떻게 예수님의 멍에를 매고 배우면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부친께서 멍에를 메어보지 못한 중소를 훈련하시곤 하셨다. 먼저 코뚜레를 뚫고 멍에를 목뒤에 얹는다. 그리고 신호와 함께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짐써레를 끌게 한다. 익숙해지면 농사일에 투입하셨다. 새끼가 있을 때에는 따로 메어 놓거나 따라다니게 놓아두셨다.
하지만 중동 및 이스라엘은 다른 점이 있었다. 어미 소에게 멍에를 씌울 때 형식적으로 새끼를 멍에에 매어 함께 동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새끼가 옆에 안전하게 따라 다니므로 어미 소는 안심하고 일을 한다. 새끼는 천방지축 논과 밭을 뛰어 돌아다니지 않고 안전하다. 새끼는 어미의 멍에를 함께 멨으나 전혀 힘들지 않도록 했다. 그저 어미 옆에서 따라 행동하며 어미가 하는 일을 배울 뿐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모든 짐을 해결하시기 위해 온유하심과 겸손으로 멍에를 메셨다. 그리고 순종, 사명, 사랑으로 멍에를 메셨다. 자신의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멍에 밑에서 함께 있는 법만 배우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께 나가 그의 멍에를 메고 그를 배우면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되는 비결이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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