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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숲 전쟁과 은혜

2008.05.07 21:12

chosun 조회 수:3526

신문발행일 2007-10-26 
||||신윤일 목사

사람들은 내면에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마음을 찡하게 하는 감동주는 영화도 좋아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쟁영화나 싸우는 격투기 영화도 좋아한다. 지난 주에 우연히 책방을 들려서 쉽게 읽을 책을 골랐다. 세계 제 2차 대전을 자세하게 기록한 책이었다.  매 페이지마다 사진과 함께 자세한 전쟁의 상황과 그 배경이 기록되어 있었다. 잠시 보다가 사가지고 나왔다. 아내는 평화나 사랑에 대한 책을 보지 않고 전쟁 역사를 보느냐고 한마디 던졌다.  ”사나이 마음을 그 누가 알랴?” 할 말이 많았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일본군은 중국 난징에서 수 십만명의 중국 민간인을 죽였고, 독일군은 9개월에 걸친 영국 런던시 폭격으로 시민5만 여명이 죽었지만 영국의 사기를 꺾지 못한 이야기, 독일군들이 러시아군들을 죽일 때, 자신들이 죽을 무덤을 파게 한 후, 총알이 아깝다고 산 체로 구덩이에 묻어버리는 전쟁의 참혹 함도 사진을 통해 보았다.
  성경을 통하여 죄성 있는 인간임을 알았지만 세상의 역사가들은 참혹한 전쟁의 이유를 어떻게 보는지 또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도 알고 싶었다. 히틀러는 광인에 가까운 지도자였음에도 어떻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전쟁을 치르게 되었는지 그 배경도 자세히 알고 싶었다. 수많은 전쟁의 영웅도 나타났지만 그 영웅이란 칭호도 허상이었다. 히틀러도 자살하였고,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독일의 전쟁 영웅 롬멜 장군도 자살하였다.  
세계 일차 대전이 일어날 즈음인 1915년 터어키는 아르미니안 민족 약 100만을 사지에 몰아 넣었다. 그 사건을 보면서 Genocide(대량학살) 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하였다. 1차 세계 대전이 끝이 난지 약 30년 만에 다시 군사 강국으로 부활한 독일의 야욕으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또 수백 만명이 죽고 부상당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마자 미국과 소련이 양대 축이 되어 냉전시대가 전개 되었고 그 냉전의 와중에 한국전쟁, 월남전쟁, 유고스라비아의 티토 정권이 무너지면서 동시에 인종과 종교로 나눠진 내전이 참혹하게 있었고, 60년간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세계의 화약고 중동 지역은 3차 세계 대전의 진앙지로 지목 받고 있다.  종교와 부족의 알력으로 아프리카의 내전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 중에 10여년 전에 발생한 투투족과 후투족의 내전을 주간 시사지인 타임즈는 표지 기사로 다루면서 잡지 표지에“지금 지옥에는 마귀가 없다”고 썼다. 부족간의 싸움이 너무나 잔인하고 악마적이어서 모든 악마들은  아프리카에 다 내려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다이프루의 내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과거에도 전쟁을 해왔고 지금도 이락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전쟁이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지금 이란이 핵무기 보유하는 문제를 놓고 부시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를 소유하면 세계 3차 대전에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내심으로 평화를 원하지만 현실은 피흘리며 고통을 주는 전쟁을 치루었다. 왜 평화를 원하면서 전쟁을 치루지 않으면 안되는가? 누구는 평화를 이루기 위한 필요한 전쟁이라고 하지만 말장난일 뿐, 계속 되어지는 전쟁의 역사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원하는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원치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인간의 역사를 본다.  이런 현상을 이해 할 수 있도록 이미 2천년 전에 바울은 이렇게 탄식했다.“내가 원하는 바 선을 행치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구나” 그런 자신을 보면서 말했다.“내가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하는 힘이 바로 내 속에 있는 죄의 힘이다.” 우리 속에는 이렇게 죄가 있다.    
정신의학자인 스콧 팩 박사는 그의 저서“다가지 못한 길”에서“악은 자기 성찰을 무서워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진실된 사람은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경전인 신약 성경의 반을 기록한 바울 만큼 인간의 죄성을 철저하게 해부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자기 힘으로 통제 할 수 없는 죄성때문에 고통 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성을 설파하였다.  배신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용서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죄악스런 배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배우는 것이다.  고통은 죄의 결과이지만 아픔이 없이는 성숙도 없다.  세상의 되어가는 모든 것에서 인간의 죄성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죄가 있는 이 세상이 어쩌면 역설적으로 우리를 성숙케 하는 가장 위대한 인생 대학일 수도 있다.  죄악스런 전쟁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성을 동시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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