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란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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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신중함이 요구된다.

2010.05.03 11:19

편집실 조회 수:4601

신문발행일 201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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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가운데 “대망”이란 책이 있다. 이 소설에 3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주인공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이 이에야스는 난세에 지략과 인내로써 천하를 통일한 인물이다. 일본의 각 지방의 막강한 실격자들이 힘을 겨루던 난세에 노부나가라는 인물이 거칠고 강한 리더십으로 천하를 처음으로 통일한다.
이 노부나가의 말을 돌보던 머슴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의 신임을 받고 출세를 하기 시작한다. 히데요시는 지략가이다. 그가 변방의 성을 축조하는 책임자로 나가 있는 사이에 쿠데타가 일어나 노부나가가 목숨을 잃게 되고 변방에 있어 난을 면했던 히데요시는 주군의 죽음을 슬퍼하며 군사를 이끌고 변방에서 중앙으로 쳐들어가 쿠데타 세력을 잠재우고 실제적인 실력자가 된다. 히데요시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이때에 이에야스는 숨을 죽이고 자신의 영토에서 몸을 낮춘다. 그리고 거기서 인내하며 내일을 기약한다. 권력을 잡은 히데요시는 난세가 끝나 남아 있던 에너지를 해외로 돌리게 된다. 당시 남자들은 거의 군인으로 징병이 되었는데 통치를 위해서 이들의 힘을 밖으로 돌려야 하는 정치적 이유와 야망으로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략해서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조선침략의 실패로 히데요시는 힘을 잃게 되었고 자신의 땅에서 숨죽이고 있던 이에야스가 기회를 잡고 그 권력이 향후 일본을 지배하게 된다.  
지금 한국은 난세다. 천안함 침몰 사건을 야기된 국가 안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하나의 에너지가 되어 몰아친다면 겉잡을 수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 들것이 뻔하다. 그러므로 신중한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에 대한 대응은 역대 대통력의 통치 스타일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그것은 리더가 가진 철학과 사회적 분위기지만, 그러나 각자의 통치스타일과 달리 결과론적으로는 모두가 신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 언론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져도 한국이 특별한 조치를 취할 카드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남한이 가지고 있는 경제 부 때문이다. 6.25 사변이라는 민족 상쟁의 처절한 전쟁의 폐허 위에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룩했다. 그 놀라운 에너지가 이제는 선진국으로 이끌고 있는 시점에서 크든 작든 전쟁이라는 야만적 파괴로 인해서 한 순간에 잃기에는 너무나 아깝기 때문이다.
지난번의 서해 해전에서 한국이 승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당했다. 국지전에서의 싸움은 이기도 하고 당하기도 한다. 문제는 당했다는 것이다. 무슨 분쟁이든 당하지 않으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있다는 것은 공격적 개념에서도 통하지만 방어적 개념에도 통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전쟁은 항상 명분이다. 명분을 만들고 그 명분을 앞세워 침략을 한다. 그러나 그 명분 뒤에는 인간의 사악한 야심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놓고 보면 전쟁은 무서운 악한 세력의 역사인 것이다. 그 어떤 이유로든지 전쟁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사악한 인간들은 그것을 즐긴다. 수백만이 죽어도 양심의 가책이 없다. 그것은 늘 자신들의 행위가 상황적으로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선과 악의 전쟁으로 언제나 귀결된다. 어느 한 인간의 야심이 많은 생명을 앗아가지만 늘 상대편에서는 악이 아니라 선으로 해석되어지고 재평가되어지는 것이 전쟁이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을 빼고는 기록할 것이 별로 없다. 그 만큼 전쟁이라는 악은 무서운 위력이 있는 것이다. 그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도하고 혹은 의지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신의 섭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전쟁이 악이라고 할 때 다소 모순되기도 하지만 인간이 가지는 한계가 결국 그 엄청난 재난의 결론을 신의 섭리로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라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의이시기 때문에 불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의가 악을 징벌하지만, 또한 인간을 구원하는 방편으로도 강하게 작용한다. 의를 충족시키시기 위해서 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가 용서를 통해 인간을 의롭게 하시므로 구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박승로 목사(애틀랜타 예은성결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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