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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인간의 야만

2010.04.12 09:02

편집실 조회 수:5060

신문발행일 201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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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0일 카틴 숲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폴란드의 대통령인  카친스키가 카틴 숲을 방문하기 위해 가다가 그가 탄 비행기가 모스크바에서 서쪽 350Km 떨어진 스몰렌스크 공항 부근에 추락해서 대통령부부를 포함해서 수행원 등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독일이 서부전선을 위해 동부의 소련을 묶어 놓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비밀협정을 맺었다. 이에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점령하고 소련의 비밀경찰이 무려 2만2천명의 폴란드의 엘리트 장교들과 지식인들을 처형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카틴 숲 사건이다.
이 카틴 숲 사건이 영화로도 나온 적이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폴란드 장교들이 속속 카틴의 어느 집으로 끌려갔고 그 집의 작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준비된 집행자가 즉시 사살하고 신속하게 시신을 운반해서 카틴 숲에 미리 파둔 구덩이에 속속 던져버리는 대량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소련의 스탈린은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폴란드의 엘리트 계층을 제거하므로 폴란드가 다시는 독립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취해진 조치이다. 이것이 비밀로 부쳐지다가 1943년 독일 나치가 카틴 지역에서 4천100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므로 세상에 알려진다. 독일 나치는 600만의 유대인을 대량학살했다. 그들에 의해서 카틴의 학살이 드러났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하다. 세계전쟁이 끝나고 폴란드는 공산 소련의 수중에 들어가므로 묻혀 있다가 폴란드의 민주화로 다시 이 학살에 대한 진상이 조사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지식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쓴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이라는 책에서 권력과 혁명의 허상을 신랄하게 파 헤쳐 페레스도로카와 동서독 통일로 대변되는 서구 사회주의의 몰락을 예견한다. 레비는 이 책에서 권력의 야만스런 얼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으로 인해서 자행된 무서운 사건들이 인간의 역사 안에 수없이 많다. 1975년부터 1979년 사이에 캄보디아의 군벌 샐로스 사르가 이끄는 크레르 루즈라는 무장 단체가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 중에 1/3에 해당하는 200만명에 가까운 국민을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작게는 아프리카에서 혹은 중동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사건들은 인간이 가지는 야만, 혹은 죄성이 인간을 얼마나 악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든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이 사상적인 이유이든지 아니면 종교적인 이유이든지 아니면 민족 간의 반목이든 어떤 이익을 위한 행위이든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것은 야만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을 하고 서로 반목하고 투쟁한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는 최악의 조건이다. 인간이 가지는 평화는 힘의 균형에 의한 잠시적인 것이다. 한 순간 어디에서 힘의 불균형이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이 인권유린과 살상이 자행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야만에는 특별한 대책이 없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 무서운 잠재적 죄성이 인간으로 하여금 어느 한 순간 모든 것을 파괴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에스겔 골짜기의 군대의 죽음이 묘사되어 있다. 엄청난 인간의 해골들이 골짜기에 널려 있는 환상이고 그 뼈들이 서로 맞추더니 살이 붙고 살아나는 환상이다. 우리가 살아난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기에 떼죽음을 지나칠 때가 많다. 떼죽음, 대량학살의 현장인 것이다. 인간의 야만의 현장에 하나님은 은혜로 그 주검에게 생명을 주신 것이다. 이것이 인류에게 희망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평화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평안주노라” 말씀하신 것이다. 평화, 히브리어로 샬롬. 평안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 야만, 죄성을 제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주된 목적은 평화인 것이다. 이 평화의 근본적인 바탕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인간은 인간 자신에게 진정한 평화를 줄 수 없다. 이 평화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인간의 야만의 종식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박승로 목사(애틀랜타 예은성결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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