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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사랑의 낭비

2010.04.05 09:35

편집실 조회 수:4852

신문발행일 201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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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동화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다. 나무는 한 아이의 놀이터가 되어주고 아이가 자라서 그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고 그 그늘에서 쉬게 하고 결국 베임을 당해서 쓸모 있는 목재가 되고 남은 그루터기는 아이가 노인이 되어 앉아서 쉬는 자리가 되어 주었다.
조류 중 모성애가 가장 뜨거운 것은 펠리컨이다. 펠리컨은 크게 늘어난 목주머니를 가진 새로서 새끼들에게 줄 먹이가 없으면 자신의 가슴살을 뜯어 먹인다. 또한 병에 걸려 죽어가는 새끼에게 자신의 핏줄을 터뜨려 그 피를 입에 넣어준다. 어미 펠리컨은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새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의 이성을 뛰어 넘어서 진정한 사랑의 낭비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쉽게 주고 베풀 수 있는 것은 참된 선물이 아니다. 값진 선물, 값진 사랑은 그 배후에 희생이 있고, 헌신이 있고, 우리가 줄 수 있는 능력보다 그것이 훨씬 클 때에 참된 선물이 되는 것이다.
서해에 침몰한 천안암에서 행여나 살아 있을 병사들을 구조하기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애를 쓰다가 해군 UDT 한주호 준위가 희생되었다. 그리고 고인의 장례에서 UDT 대원들은 그들의 노래 "사나이 UDT가(歌) 1절을 불렀다. "우리는 사나이다. 강철의 사나이. 나라와 겨레 위해 바친 목숨. 믿음에 살고 의리에 죽는 사나이. 나가자. 우리의 낙원. 아. 사나이 뭉친 UDT. 이름도 남아(男兒)다운 수중 파괴대"
거친 물살과 싸우며 주어진 시간에서 최선을 다하며 침몰함 안에 갇혀 있을 장병들을 구하려 수없이 죽음을 불사하고 구조 활동을 전개하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생명을 향한 숭고한 희생정신을 보게 된다. 그들의 희생을 보면서 우리는 낭비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실리적인 보다 더 위대한 무형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의 희생은 고귀하고 값진 것이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베다니 문등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마리아가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붓는다. 그 당시 유대 여인들은 값진 향수를 병을 몸에 달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향유는 매우 값진 것으로 향유의 액수는 가롯 유다의 계산에 의하면 300 데나리온이었다. 300 데나리온은 당시 1년 동안 노동자가 벌어들인 임금에 해당되는 것이고 하루에 품삯을 5만원으로 잡고 5일 일한다고 가정한다면, 한 달에 100만원이 되고, 1년에는 1,200만원이다. 이 여인이 사용된 향유의 양은 한 옥합이다. 이것은 당시 5,000명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가격이다. 이 여인은 자신이 가진 소유 중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을 주님께 드렸다.
마리아는 죽은 오라버니를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향유 한 옥합도 오히려 부족했다. 그리고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극적이고 감격적인 신앙의 경험이 없는 제자들에게는 이러한 여인의 행동이 낭비로 보였다. 그래서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마 26:8,9.” 라고 시비를 건다.
주님이 이런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말씀하신다. 내게 좋은 일, 주님은 앞으로 자신이 십자가 못 박혀 죽은 다음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미리 내다보신 것이다. 그 때에 누구나 죽으면 발라지게 되어 있는 향유를 바르지도 못 한 채 묻히게 된다는 것을 아신 것이다. 그러니 장사를 위해서 이 여인이 미리 향유를 붓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얼마나 큰 견해의 차이인가? 많은 경우에 있어서 다툼과 오해는 견해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성경에는 신앙과 불신앙,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얼마나 많은 대립과 갈등을 가지고 있는가를 발견할 수가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다가 관심을 두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이 여인의 행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박승로 목사(애틀랜타 예은성결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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