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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무소유한 소유

2010.03.22 08:03

편집실 조회 수:4659

신문발행일 201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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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이라는 분이 자신의 책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겨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인기 작가였던 그의 책에 대한 절판이 알려지자 오히려 그의 책을 소유하려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가 쓴 책이 단숨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여러 권 올랐다. 그의 책 가운데 대표적인 책이 「무소유」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소유하므로 집착하게 되는 것에 대한 번뇌를 말하는 것이다. 집착은 자유를 잃게 만든다. 그러므로 소유한 것을 버림으로 세상의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소유란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살 수밖에 없다. 무소유를 주장하지만 소유한다. 그것이 무형이든 유형이든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무소유는 현실적으로는 고통을 수반할 수 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책임 때문이다. 인간은 책임적 존재이다. 이 책임이 현실적으로 무소유를 불가능하게 한다. 무소유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그러나 이 말이 감동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를 소유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적 영역을 뛰어 넘기 때문이다. 무소유에 대한 갈망은 소유에 대한 욕심으로 더럽혀질 수 있는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고 또한 삶에 선한 행위를 유발시키는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소유의 정신은 배울 수 있지만 완전한 무소유는 불가능하다. 무소유는 결코 우리를 자유하게 할 수 없다. 그것이 선한 동기는 유발하지만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소유하되 좋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유와 채움은 같다. 우리가 그 어떤 것이든지 소유하기 위해서는 채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채우되 맑고 향기 나는 것으로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더러운 구정물이 맑아 질 수 있으려면 비우고 맑고 깨끗한 물로 채워야 한다. 그러나 비우고 채우면 좋지만 인간이 가지는 타락한 특성상 비우고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계속적인 채움을 통해서 넘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더러워진 샘을 맑게 하는 원리와 같다. 오염된 샘에 계속 맑은 물이 채워지면 더러움 것들이 넘쳐 흘러나가 샘이 깨끗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원리이고 법칙이다.
버리고 비움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은 진리는 채움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믿음을 소유하고 채우는 것이다. 절망을 소망으로 채우는 것이다. 미움을 사랑으로 채우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채움은 욕심이 아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마구 채우려고 하면 문제가 된다. 채움이 나만을 위한 채움이라면 그것은 욕심이다. 무(無)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다소 거북할 수 있다. 그러나 채움은 중요한 진리이다.
주옥같은 글을 쓰기 위해서 좋은 책을 읽고 마음에 글로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학문의 진전이 없이는 위대한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저수지에 물이 마르면 나눌 수 없다. 먼저 퍼주기 위해서는 채워야 한다. 지식을 나누려면 지식을 채워야하는 것이다.
법정이라는 분은 그가 믿는 구도의 길대로 무소유를 추구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면에서 무소유한 소유자이다. 그는 무소유를 주장했지만 소유했다는 것을 깨닫고 무소유에 대한 갈망으로 자신의 글에 대한 절판을 유언 했을지도 모른다.  
소유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유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무소유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 모순되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무소유한 소유이다. 맑은 것으로, 아름다운 것들로, 진리로 자신을 채워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알 때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있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채움이 없이 인간이 절대로 자유하고 행복할 수는 없다. 소유의 귀중함을 알아야 한다.
소유에 항상 따르기 쉬운 것은 “지나침”이다. 지나치게 소유하려고 할 때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나침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성 때문이다. 인간이 죄를 범하므로 찾아 온 것이 결핍이다. 이 “결핍”, “모자람” 때문에 본능적으로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끝없는 욕구가 발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성경은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소유한 소유를 추구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참 생명은 진정한 소유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버림이라는 행위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한 참 생명을 소유하므로 얻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소유 정신은 존중하나 진리를 소유하는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박승로 목사(애틀랜타 예은성결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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