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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팔복(八福), 낮은 곳으로

2010.03.15 10:04

편집실 조회 수:5398

신문발행일 201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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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공기와 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은 약하게 보이나 강합니다. 힘이 셉니다. 한 없이 부드러우나 무섭도록 거칠기도 합니다. 물은 안락하고 포근합니다. 생명을 받고 생명을 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물이 흐른 방향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이 흐르는 방향은 곧을 수 없습니다. 직선이 아니라 곡선입니다. 굽이굽이 흐릅니다. 물의 방향은 낮은 곳입니다. 물이 지나가는 곳에는 생명이 요동칩니다. 각종 생물들이 자라납니다.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많은 동물들이 모여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걷다 보면 겉으로 볼 때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이 보이지만 그 길을 따라 하나님이 축복이 흐릅니다. 물은 흘러야 합니다. 오래 고여 있으면 썩습니다. 낮은 곳으로 흘러야 살리는 물이 됩니다.  
예수님은 팔복을 통해서 우리를 낮은 곳으로 인도합니다. 팔복은 세속적 복의 개념과 대립합니다.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 주림, 긍휼함, 화평함, 핍박받는 것, 이것은 분명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을 뒤집는 종말론적 전복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는 세상이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권고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정체성입니다. “소금이고 빛이다.” 인 것입니다. 소금과 빛에 대해서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둘의 공통점은 “드러남”입니다. 소금은 그 맛으로 드러나고, 빛은 밝기로 들어 납니다. 숨기고 싶어도 절대로 숨겨지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소금이면 짠 맛이 나는 것이고 빛이면 어둠을 밝히게 되는 것입니다. 드러납니다.
만약에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인라고 하면서 이런 특성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시 한 번 깊은 성찰을 해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드러납니까?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 주림, 긍휼함, 화평함, 핍박받는 것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입니다.
팔복은 기독교 영성에 중요한 덕목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애통함이 있어야 온유해야 주리고 목말라야 긍휼해야 화평해야 핍박을 받아야 더 깊은 영성을 소유하게 되고 진정 세상을 변화 시키는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이 있나니”라는 말은 헬라어의 “마카리오이”입니다. 이 말을 의역하면 “축하합니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난함을 축합니다.”, “애통함을 축하합니다.”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되게 살다 간 사람이 있다면 이 팔복을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인생을 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 팔복을 순수하게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지만 가장 부자로 산 사람은 아마도 마더 테레사수녀 일 것입니다. 그녀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돈을 많이 모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돈을 전부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을 위해서 썼습니다. 물질을 소유하는 자가 부자가 아니라 그것을 쓰는 자가 부자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이 존경하는 모든 인물들은 많이 가진 자들이 아니라 바로 팔복을 실천한 소금과 빛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알면서 현실적으로 부정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부패성, 연약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 적나라하게 언급하면 죄성 때문인 것입니다. 이 죄의 근원은 인간이 가진 교만입니다. 이 교만이 인류에게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겸손해야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에 임하셨습니다. 낮고 천한 곳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낮아지는 것, 겸손해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합니다. 겸손을 이 세상에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낮아지고 겸손해야 소금과 빛으로 드러납니다.
높은 자리와 많이 가진 것이 그 사람에게 영광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낮은 자리, 무소유가 사람을 감동하게 만들고 영광을 주는 것입니다. 소금과 빛의 실천은 겸손이고 그 구체적인 삶이 팔복인 것입니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흘러 주변을 풍요롭게 변화시킵니다. 팔복은 낮은 곳입니다.

박승로 목사(애틀랜타 예은성결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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