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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통칼럼 순리일까, 역리일까?

2015.04.14 09:03

조선편집 조회 수:1605

신문발행일  
쇠 난로에 장작불을 지피며 언제 추위가 가실까 봄을 기다렸었는데, 춥던 날씨는 어느덧 사라졌다. 만발한 꽃들이 자취를 감추었는가 했더니, 대지는 푸른 색 옷을 갈아입은 듯 생동감이 넘친다. 계절의 법칙에 따라 어김없이 봄이 왔다. 언젠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위나라 동해 사람이었던 왕랑은 서주자사 도겸의 치중으로 있다가, 조조에게 귀순하여 간의대부인 군사가 되었다. 제갈량과의 전쟁으로 하후무가 대패하자, 왕랑은 대사마 조진이 십만 대군으로 제갈량을 토벌하려 할 때 함께 출전한다. 왕랑은 전장에서 마주친 제갈량과 논쟁하던 중에 제갈량의 논변에 수치심을 느끼고 분을 내다가 낙마하고 그 연유로 죽었다. 그 때 제갈량이 한 말이 ‘순천자흥(順天者興) 역천자망(逆天者亡)’ 란 내용이다. 즉, 천명은 이미 정해진 것, 인간의 뜻에 의해 억지로 바꿀 수 없다.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자는 흥하고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 그러니 항복하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시대의 전후를 볼 때, 이는 맹자 명심보감의 가르침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천리 혹은 순리를 따르면 잘 되고, 역행하면 망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순리란 ‘무리가 없는 순조로운 이치나 도리’ 역리란 ‘살아가는 이치를 거스름 혹은 역설적인 이치’를 일컫는다. 성경의 가르침 데로 하나님의 로고스(절대 진리 혹은 신의 말씀)와 창조 질서 속에서 과학, 자연, 깨끗하고 선한 양심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하나님과 자신과 타인 앞에서 부끄럼이 없이 사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순리는 무리가 없다. 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듯, 춘하추동 계절의 법칙을 따라, 봄이면 씨 뿌리고 여름이면 수고하고 가을이면 추수하고, 겨울이면 안식한다. 낮엔 열심히 일하고 피곤한 밤엔 수면하는 것이 순리다. 자의든 타의든 이 기본을 버리면 역리다. 절대진리가 아닌 소견에 좋은 데로 사는 것은 수많은 문제 야기와 그 결국은 파멸이다. 이는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지금 지구촌에서는 노아 홍수 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때, 폼페이 최후의 날과 방불한 역리가 득세하는 세대가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절여진 사상, 지식, 생활방식, 과학만능주의를 앞세우고, 소견대로 사고하고 언행 하는 것을 특권이요, 자랑이요, 행복처럼 치부되고 있다. 그리고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 나아가 진리를 버리고 비 진리를, 선을 버리고 악을, 효를 버리고 불효를, 이성을 버리고 동성을, 아름다움을 버리고 추함을, 천륜과 인륜을 버리고 패륜을 조장, 묵인, 그렇게 행하고 있다.
성경은 선포한다.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 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 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사람은 창조주의 형상을 지닌 순리적 존재다.
그럼에도 그 탁월한 신형상으로 역리적 문명과 문화의 바벨탑을 쌓아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떻게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종노릇을 하는 것일까? 어떻게 사랑은커녕, 천륜과 인륜을 저버리는 것일까? 어떻게 온갖 악행을 일삼는 것일까? 그래도 하나님은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하신다. 이스라엘에게 선민의식이 있다면, 우리는 경천애인 의식으로 ‘하나님 경외, 사람 사랑’을 실천하며 순리로 살았었다. 사도 바울은 한 때,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스르며 역리로 살았었다. 하지만 그는 돌이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었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과 진리 앞에 역리가 아닌 순리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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