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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통칼럼 옳고 그름과 진리

2015.03.13 19:33

조선편집 조회 수:1785

신문발행일  

몇 일 전,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늦은 밤, 카톡에서 몇 마디의 덕담과 함께 ‘사람 수만큼 진리가 다를 수도 있겠다’란 글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진리란 ‘허위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진리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이론 중에는 대응설적 이론, 정합설적 이론이 있다. 대응설적 이론은 ‘하나의 진술은 그것이 사실에 대응하면 참이요, 사실에 대응하지 않으면 거짓이다’라는 것이다. 정합설적 진리관은 명제들의 일관성과 동일한 것으로 ‘하나의 명제는 선택된 명제들의 집합과 정합하지 않을 때 거짓이요, 그 집합 속에 명제가 정합성을 포함할 때 참이다’라 한다. 이 외에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설, 만민의 일치가 진리라는 설, 진리의 기준을 지식의 유효성에서 찾는 실용주의 진리관도 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일반적인 의미의 진리, 논리적인 진리, 인식의 진리, 존재론적인 진리, 초월적인 진리, 윤리적인 진리로 구분, 설명되기도 한다. 일반적인 의미의 진리란 ‘존재와 정신이 일치하는 것, 존재와 정신이 서로 완전히 꿰뚫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존재와 그 존재가 나타내 보이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 거짓이라 한다. 논리적인 진리란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논리학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한 가지의 사태를 올바르게 나타내는 판단의 성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진리는 정신과 사물이 일치하는 것’이라 한다. 인식의 진리란 인간의 ‘인식에 기반을 두고 보편타당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존재론적인 진리란 ‘존재와 존재자 자체에 관련되는 것으로, 모든 사물들의 잠재적이고 기초적인 진리의 바탕을 창조자의 모범적 정신의 이념에 따른 창조에서 찾는 것’이다. 초월적인 진리란 존재하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하되, 존재자는 존재에 관여한다. 그리고 ‘있다’는 말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는 포괄적으로, 그러나 초월적으로 모든 것을 참이게 한다. 이 초월적인 진리는 아직 규정되지 않았고 앞으로 규정되어야만 한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의 현실적인 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참된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윤리적인 진리란 인간의 행위방식의 성질에서 찾는 것이다. 외적인 행위가 내적인 심정의 확신과 일치해야 한다. 나아가 자신을 정직하게 평가하는 것과 진리를 인식하려는 정직한 의지를 말한다. 지금은 포스트 모던니즘의 시대다. 사람마다 개성과 주장이 다르고 강하다. 개인의 사고와 주장이 각기 다른 선악의 기준에서 표출되기에 ‘옳다 그르다’ 쉽게 말할 수 없다. 천지는 없어져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지만, 많은 부분, 과거 절대 가치와 기준에 따른 진리가 통용되지 못하고 순리가 역리가 되기도 한다. 같은 사물을 놓고 사람에 따라 ‘아름답다, 그저 그렇다, 밉다’ 하든지, 같은 사건을 놓고 용감한 행동, 영웅, 순교자라 부르는가 하면, 반대로 이를 테러 혹은 악의 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사건을 이리 저리 말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진리를 말한다기 보다, 자신의 가진 가치 기준 혹은 생각과 판단에 따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낸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을까? 그런 차원에서 사람의 수만큼 진리가 있을 것 같다는 말이 동감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판단과 행동의 기준은 변하기 마련이다. 모 글에 ‘사람이 어릴 때는 자기의 좋고 싫은 감정이 기준이 된다. 좀 더 자라면 자기에게 이익과 손해가 되느냐, 자신의 편이냐 아니냐가 기준이 된다. 좀 더 성숙해지면 자신의 판단에 옳고 그른 것이 기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각자 경험, 태도, 기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기도 하고 설정된 기준이 압도를 당해 무너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로, 때로는 옳고 그른 것도 뛰어 넘고, 불편한 진실에 대한 도전 즉,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에 따른 기준도 보아야 한다. 옳다고 모두 맞는 것도, 그르게 보인다고 모두 잘못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소견대로 행한 것을 죄’라 하셨다. 율법적인 강박관념, 자신의 의, 얽매인 사고는 때로 올무와 우상이 되고 자타에게 큰 해를 주기도 한다. 바리새인들이 책망 받은 것도 그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옳고 그름을 뛰어 넘는 사랑이요, 은혜였다.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행동,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 삼은 것, 등은 옳고 그름을 뛰어 넘는 것들 이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옳고 그름을 초월하여, 부활능력으로 죽은 나사로를 향해, 내가 깨우러 가노라, 죽은 나사로를 향해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신 예수님만이 인간 생각을 넘고 비켜가시는 절대진리의 경계가 아닐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자신의 옳고 그름이 아닌, 그것을 비켜 넘어서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따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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