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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통칼럼 상처와 치유

2015.02.13 12:44

조선편집 조회 수:2121

신문발행일  
상처가 있는 사람은 타인의 작은 접촉에도 큰 통증을 느끼며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건강한 피부는 만질수록 좋은 느낌을 받는다. 반면에 상처 난 피부는 작은 접촉에도 쓰라림을 느끼게 되지 않은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무섭고 엄격하며 여러모로 태산 같은 분이셨다. 장성한 후 알게 된 것은 그 뒤에 숨겨진 자상함과 사랑이었다. 험난한 시대의 희생자로서 눈물과 아픔도 가지고 계셨다. 여러모로 위로와 돌봄이 필요하셨던 분이셨던 것 같았다. 숨겨진 그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던 형제들 중에는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했던 것 같다.
필자와 함께 사시는 장인 장모님은 연로하여 몸도 마음도 부자연스러워 하시고 기억도 충분치 않으시다. 하지만 아직도 아내가 잊지 않고 가끔 이야기 하는 사건이 있다. 아내가 어릴 때 친구가 준 주스를 먹었는데 아무 잘못도 이유도 모르고 장인께 무진 매를 맞았다는 것이다. 그 사건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치유가 된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옆에서 아쉽게 생각되는 것은 장인께서 ‘내가 그랬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란 말씀보다 ‘내가 경솔했었다. 마음이 아팠겠구나. 잘못했다. 미안하다’라 사과하시는 것을 본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살다 보면 사람은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 받는다. 다행한 것은 대부분의 상처는 자연 치유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은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해 아파하며, 더 큰 아픔과 상처를 타인에게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상처에 동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때로는 경험한 상처로 성숙해 지는 사람도 있다. 동일한 사건으로 상처를 입는 사람도, 도전과 치유로 승화 시키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사람은 왜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일까? 여러 요인 중에 자존감의 문제가 가장 크다. 자존감이란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며, 그럴 가치와 능력과 잠재력을 소유한 소중한 존재라 믿는 마음’이다. 자존감이 부족하면 타인의 인정과 칭찬에 목을 매고 추측에 민감하게 된다. 잘난 사람에게 못났다 한들 민감할 사람은 없다. 자존감이 크면 주고 받는 상처에서 자유 할 수 있다.
상담심리학자, 바르데츠키는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란 책에서 상처를 주는 것은 행동자극이요, 상처를 받는 것은 열등감 때문이라 했다. 주고 받는 상처는 상호 관계가 깊다. 자존감에 대한 균형을 상실하고 우열에 빠질 때 상처를 주고 받게 된다.
모 독일 일간지에 한 기자와 모건 프리먼의 인터뷰 내용이다. “기: 내가 당신에게 '니그로'라 하면 뭔 일이 발생할까요? 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요. 기: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프: 만약 내가 당신에게 '바보 독일 암소'라고 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요. 프: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기: 난 관심이 없으니까요. 프: 나도 똑같습니다. 기: 그건 일종의 눈속임 아닌가요? 프: 당신이 나를 '니그로'라고 부르면 문제는 당신에게 있지 나한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왜냐, 당신은 잘못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내가 관심을 끊어 버림으로써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닌 당신의 문제가 됩니다. 물론 행동으로 나를 공격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죠. 당연히 저 자신을 방어 할 터이니까요.”
상처의 도발을 문제의식으로 마음 상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그 권리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다.
‘마음 문의 손잡이는 자신의 안쪽에만 달려있다’란 헤겔의 말처럼 상처를 주고 받게 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는 의미이다.
그 다음은 기대치가 높은 관계가 될 수록 주고 받는 상처가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기대가 없다면 자신과 상관 없는 일에 상처 받을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계 중심보다 일과 목표 중심인 사람이 타인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받기 쉽다. 욕구충족이 되지 않을 때는 탓을 타인에게 돌리거나 자신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상처를 주는 사람의 특징 중에 하나는 경쟁심이라고 한다. 사람은 자기 중심일 때 경쟁심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우리가 상처를 주고 받는 환경에서 자유 할 수 있을까? 욕심에서 벗어나 자신의 것을 내어 주는 것이다. 가진 것이 없는데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무재칠시(無財七施), 가진 것이 없어도 타인에게 줄 수 있는 7가지가 있다고 한다. 누구든지 “화안시(和顔施), 언시(言施), 심시(心施), 안시(眼施), 신시(身施), 좌시(座施), 찰시(察施)” 즉, 얼굴모습, 말, 마음, 눈, 몸, 자리, 헤아림을 통해 타인을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라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의 자존감으로 자신을 보고 타인을 보자. 그러면, 상처는 치유로 변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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