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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발행일  

세계는 마약, 각종 폭력을 위시해서 수 많은 문제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처에 막무가내 막가파들이 있어, 상상을 초월하는 악행을 한다.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이는 성경 말씀이다.
“트러블 메이커(trouble-maker)의 원조는 사단, 마귀이다. 그리고 각종 문제는 인간의 타락 이후부터, 사단의 속임과 영향 하에 있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있어 왔다. 자연발생적인 문제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제 중앙에는 항상 사람이, 사람의 배후에는 암흑의 세력이 있다. 그리고 트러블들은 암흑의 세력에 의해 고안되거나 기인한다. 나아가서 악행과 문제를 조성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력도 있다. 사람이 이에 이용당해 자신도 모르게 트러블 메이커가 된다.
부부가 외출하려고 자가용에 올랐다. 막 운전하려던 남편이 운전하기 힘들 정도로 앞 유리가 더럽게 보이자, 부인에게 앞 유리를 좀 닦으라 부탁했다. 부인이 열심히 앞 유리를 닦고 차에 올라타려 했다. 그 때 남편이 왈 ‘차 유리 하나 못 닦아!’ 라 소리쳤다. 부인이 당황하며 다시 확인 해 보았지만 깨끗했다. 그래도 남편이 계속해서 더럽다 호통을 치므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남편의 안경에 오물이 잔뜩 묻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부인이 남편을 향해 ‘당신 안경이 더럽잖아요!’ 했다.
트러블 메이커는 자신이 트러블 메이커인지도 모르면서, 자타를 힘들고 불행하게 한다. 문제를 풀거나 정답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문제를 만드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트러블 메이커가 있지 않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하루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어린 아이가 들어와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화판을 건드려 넘어뜨리고 말았다. 화가 난 다빈치는 아이를 심하게 꾸짖어 밖으로 쫓아냈다. 꾸중을 들은 아이는 밖으로 나가 울고 있었다. 다빈치는 일을 수습하고 다시 그림을 그리려 했지만, 도무지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애를 써봤지만,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그는 밖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너무 나무란 것 같구나. 나를 용서해 다오.’ 그리고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와서 ‘마음대로 놀려무나!’ 했더니, 그 때야 마음이 평온해 진 그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고, 걸작품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처럼 트러블 메이커는 자타를 불행하게 한다. 가시나무처럼 매사 가까이 하고 스치고 접하는 것마다 흠과 상처를 준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어떤 환경을 만나든, 문제를 만들며 불화를 조장한다.
하지만 피스 메이커(peace-maker)는 은혜롭고 긍정적이어서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어떤 환경에 노출이 되든지 화평하게 한다.
고로 성경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자녀)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 했다. 원래 피스-메이커(화평케 하는 사람)는 헬라어 ‘에이레노포이오니’이다. 이는 헬라어 ‘에이레네’와 히브리어 ‘샬롬(화평, 평화)’에서 온 것이다. 이는 영성이 내포된 낱말로 각종 관계에서의 우호적 관계를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이 샬롬은 단순한 무탈, 무고가 아니다. 다툼, 전쟁이 전혀 없이 번창함 속에 깃드는 평안으로서, 하나님의 통치와 언약이 완전한 상태로 유지되어 있는 축복 상태에서, 예수로 구원 얻은 사람들이 영적, 육신적, 정신적, 전인적으로 누리는 완전한 평화다.
고로 유대인들은 이를 하나님의 선물로 인식했다. ‘하나님은 화평케 하는 분이다’ 그리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은 십자가 대속으로 ‘평강의 왕, 화목케 하는 분’이셨다. 고로 하나님 없는 완전한 화평,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인간 스스로 전인적 평화를 지키고, 평화가 깃들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적 인격은 사랑, 의로움, 선함으로, 외적 인격은 화평함으로 보여진다. 일반인 보다 의식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그 보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리고 트러블을 화평의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롭고 역량 있는 사람이다. 화평은 참 좋은 것이다. 하지만 화평론자는 많은데 실제로 ‘화평케 하는 사람’은 적다. 아이러닉하게도, 이런 화평론자들에 의해 화평이 깨지고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참 피스-메이커는 예수님뿐이시다. 그는 십자가의 대속으로 화평을 이루셨다. 그 화평을 우리에게 주시며, ‘화평케 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하셨다.
화평은 대가를 치룰 때에만 가능하다. 과연 나는 트러블 메이커인가? 피스 메이커, 화평케 하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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