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란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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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발행일  

파란 하늘과 맑은 물을 보면, 마음도 시원하다.
동요에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하늘보고 자라니까요.” 그리고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 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 나라 파란 나라를 보았니. 맑은 강물이 흐르는 파란 나라를 보았니... 온 세상 모두 손잡고 새파란 마음 한마음 새파란 나라 지어요, 우리 손으로 지어요, 어린이 손에 주세요 손!” 이란 노래도 있다. 이 동요는 천국의 한 장면 같고, 티 묻지 않은 순진한 어린이들을 연상케 한다.
파란 마음과 하얀 마음의 차이는 무얼까? 경계는 모호하나, 의미를 한정 짓자면, 파란마음은 순수한 마음, 하얀 마음은 잡티가 묻지 않은 깨끗한 마음으로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순수하다’와 ‘착하다’ 이 두 가지 의미를 합하면 무엇이 될까? “청결한 마음”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이를 전제로, 모두가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청결한 마음을 소유하면, 세상은 행복한 복락원이 되지 않을까?
유대인 탈무드에 하나님이 천사를 시켜 행복을 인간의 마음 속에 넣어 두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 것을 찾지 못하거나 지키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간이 지키고, 버려야 할 오심(五心)에 대한 설명의 글 중에, 지켜야 할 오심은 신심(信心-모든 것을 믿는 마음), 대심(大心-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큰 마음), 동심(同心-함께 할 수 있는 마음), 겸심(謙心-타인의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는 세심하고 겸손한 마음), 칭심(稱心-칭찬하는 마음)이요, 버려야 할 오심은 의심(疑心-의심하는 마음), 소심(小心-사소한 것에 치우치는 마음), 교심(驕心-스스로 교만해지는 마음), 변심(變心-쉽게 변하는 마음), 원심(怨心-원망하는 마음)이라 했다.
더 나아가,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란 성경처럼, 청결한 마음이 행복임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외부의 조건 속에서 이를 찾으며, 마음을 빼앗긴다. 얼마나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까?
마음이란 낱말은 ‘감정이나 생각, 기억 따위가 깃들이거나 생겨나는 곳’이다. 백과사전은 마음을 ‘사람 내면의 성품(性성).감정(情정).의사(意의).의지(志지)를 포함하는 주체’라 정의한다.
성경에서는 헬라어 ‘카르디아’, 히브리어 ‘레브’이다. 이는 ‘신체의 중심 기관으로 전인적 지정의(知情意)를 주관하는 인격 혹은 그 좌소’라 한다. 사랑, 미음과 같은 감정들이 마음에서 기인하듯, 마음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인식하고 관장하고 의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창조된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이었다. 그 능력과 아름다움도 탁월했었다. 하지만 인간타락과 함께 그 아름다움도 탁월함도 상당히 상실하고 역기능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죄로 본래의 청결함을 잃었다. 고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인간의 마음이 침해를 받아 어두워졌다. 그리고 종교심, 도덕심, 인격적 영적인 경계 능력과 전인적 삶도 무너졌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마귀에게 빼앗기고 마귀의 지배아래로 추락했다. 영적 정신적인 시야도 판단력도 상당히 잃어버렸다.
그러면 타락한 인간은 ‘청결한 자’가 될 수는 없을까?’ 예외의 소수를 제외하고 사람들은 죄를 벗고 청결한 자가 되기 위해, 나름대로 부단한 노력을 한다. 인격을 수양하거나, 고행을 하거나 도를 닦는다. 어떤 이는 명상을 하고, 어떤 이는 선행을 하고, 어떤 이는 개선된 환경을 찾거나 교육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동물들을 잡아 제사를 드림으로 죄를 씻으려 한다. 그 결과 상당한 도덕적, 윤리적이고 인격적인 수준에 도달하여 범인들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사람도 자력으로 신 앞에 설만큼 득도하거나, 충분한 청결함에 도달한 사람도, 도달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창조주께서 한 길을 예비하셨다. 그리고 자신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대속의 제물이 되셨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요, 누구든지 이 예수를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값없이 죄와 사망에서 해방을 얻고 하나님 앞에 설수 있을 만큼 충분히 청결한 자로 인정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살 동안 하나님을 보든 못 보든, 경험하든 못하든, 언젠가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인간에게는 육안(肉眼)외에, 지안(知眼), 감각안(感覺眼), 신안(信眼), 영안(靈眼) 등이 있다. 지식은 망원경과 같고, 청결한 마음은 렌즈와도 같아, 학자는 지식, 시인은 통찰력, 과학자는 실험과 연구, 철학자는 사색과 명상을 통해 많은 것을 본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자는 예수의 보혈로 청결한 마음을 얻고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실존을 체험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 하시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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